100년 후 인천사주는 어떤 모습일까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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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아동 인근에는 오래전부터 무당집이 많았다. 1954년 '단장(斷腸)의 미아리고개'(6·28전쟁 이후 보릿고개를 그린 노래)가 유행할 정도로 미아는 가난한 서민들이 터를 잡은 한 많은 곳이었다. 무당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. 그러나 오랜시간 점집을 지키던 무당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은퇴하고 있으며,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떠나기도 했다.